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사람도 차도 너무 많고, 카탈루냐 역에는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어서 손에 땀이 배었고, 꽃가루 때문에 연신 기침이 나왔다.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처럼 소매치기를 당할까봐 잔뜩 긴장하면서 숙소를 찾아 간 기억. 솔직히 셋째날 정도 까지만 해도 바르셀로나는 그저 그랬다. 심지어 남편은 "왜 바르셀로나에 6일이나 머무는거야?"라고 했을 정도.
우리는 딱히 목표도 없이 계속 어슬렁거리며 탐색하고 먹고 마시기만 했는데 나흘째 부터 이 도시가 슬슬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특히 쇼핑! 바르셀로나는 쇼핑의 도시였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가면 있는 명품이라는 흔하고? 비싼 브랜드 말고 골목 곳곳에 있는 개성있는 샵들 말이다! 옷, 그릇, 홈데코, 음반 그리고 유니크한 상품 진열..
망설이다 사지 않았던 요리책과 판쵸, 작은 도자기 인형이 너무 아쉽다.
보케리아 시장 안의 유명한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직원들은 유쾌하고 친절했지만 명성에 비해 가격은 비싸고 맛은 실망스러웠다. 이곳 뿐만 아니라 일부러 찾아간 곳치고 만족스러웠던 곳은 별로 없었다.
대성당.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린 사람들이 카탈루냐 전통 춤을 추고 있다. 음악도 아름답고 하늘도 너무 아름 다웠다.
골목 곳곳에 피아노 연주, 아리아를 부르는 아줌마.. 그냥 거리 연주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훌쩍 간다.
- 프레드릭 마레스 뮤지엄
이렇게 많은 성모상과 예수상을 본 적은 처음이라 처음에는 기괴하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만족했던 미술관이다. 조각품 외에도 프레드릭 마레스씨가 덕심을 발휘해 모은 파이프와 지팡이, 안경, 우산, 카드.. 하여간 잡다하지만 깊이 있는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다. 최초 관람일로부터 6개월 내에 한번 더 무료 관람이 가능한데, 우리는 숙소에서 만난 귀여운 한국분들께 표를 드렸다.
지하에는 오래된 돌무덤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곳의 빈 공간에서 젋은 거리 연주자 3명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천장이 높아서 저들의 맑은 목소리가 미술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카탈루냐 지방의 음악같기도 하고.. 너무 궁금해서 미술관 측에 문의를 해본다는게 아직도 안하고 있다.
- 가우디
가우디의 바르셀로나라는 말도 있듯이, 바르셀로나에 가서 가우디 작품을 그냥 지나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남들 다 보는 거 꼭 봐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뭣도 모르는 것이었다. 스페인에서 성당을 하도 구경하다 보니 처음과 달리 나중엔 모두 비슷해보여 시들해 졌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정말 독보적이면서 기괴하고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지만 성당의 높이와 아름다움에 눌려서 수많은 인파는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적게 관람할 생각은 없었는데 구경할 거리가 많아서 시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시간표 짜서 촘촘하게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입장료 내는 곳에 하루 2곳 정도 가면 정말 많이 보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바르셀로나는 최소 10일짜리 여행지라고 결론을 내렸다.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잔 하려고 해변에 갔는데 의외로 한산하고 추웠다.
일단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맛있는 해물찜을 먹었다. 검색해보니 트립어드바이져 상위에 랭크된 식당이네.
이번 여행에서는 일부러 맛집 찾아가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는데가 없다지만 어쨌든 하루종일 생소한 길을 다니는 일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맛집까지 구글링을 하면 예민해서 딱 싸우기 좋더라.
남편이 낮에 지나다가 눈여겨 본 맥주집이 있어서 숙소에 가는 길에 들렀다. 탭은 15개 정도 있는데 테이스팅도 가능하다. 벽에 어떤 남자의 사진이 가득 걸려 있길래 누구냐고 물었다. 바텐더는 '스페인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영국인(맞나? 가물가물)인데 한달 전인가 사망해서 그를 기리기 위해 꾸며놓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맥주는 비쌌지만 (크래프트 비어는 이곳에서도 싸진 않다) 직원도 친절하고, 나도 한 손님이 두고 간 아이폰을 찾아 주기도 했다.
숙소에 가려고 탄 버스의 운전기사는 유쾌하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는데 내릴 때 '그라시아스!' 하고 크게 외치자 그는 더 큰 목소리로 '아디오스!'라고 답했다.
맛있지만 시끄러운 가게에서 피자와 맥주를 먹은 후 쉬어갈 겸 들른 바르. 뭔가 동네 사람들만 오는 분위기였지만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싶어서 들어갔다. 안주는 그저 그랬는데 아저씨의 무뚝뚝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써주는 친절이 좋았다. 자존심있는 친절이랄까.. 그런 방식의 친절을 스페인에서 많이 느꼈다. 대응이 느린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고, 내가 지금 좀 바쁜데 잠깐 기다려줄래? 이런 것, 손님과 직원이 동등하다는 느낌. 한국에서는 서비스 업종의 직원이 자기 감정을 드러내면 손님에게 무례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 않은가.
바르셀로나에서는 현지 유학생의 아파트를 룸쉐어했는데 대 만족이었다. 말 그대로 룸쉐어라 한인민박처럼 조식은 제공되지 않고 대신 주방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아침에는 오믈렛이나 하몽 샌드위치를 만들고 저녁에는 이곳에서 맛 본 요리를 만들어 보곤 했는데 집주인이 요리 공부를 하는 분이라 그런지 숙소 중 이 곳의 칼이 가장 잘 들었다고 남편은 만족해 했다.
여행지에서 된장찌개가 그리운 순간은 분명히 있지만 맛있는 빵과 커피의 나라에서 룸쉐어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바르셀로나 뿐 아니라 스페인을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포르투로 가는 마음은 무겁기까지 했다.
여행 전 걱정했던 소매치기는 '도대체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소매치기를 당하는 건가' 싶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모두가 그렇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했다. 혼자 여행했을 때는 조금 안좋은 대접을 받을 경우 위축되고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동행이 있으면 그런 것들은 금방 극복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혼자 여행자들이 부분 동행자라도 찾는 구나, 이해도 하게 되었고..
어쨌든 이렇게 스페인에서의 3주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일이 포르투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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